책소개
≪운명≫은 알프레드 드 비니가 사망한 후 발표된 시집으로 일생의 좌절과 고독을 독서와 명상으로 관조한 철학 시집이다. 비니의 철학 사상은 비관주의로서, 인간은 비극적인 운명 앞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인간의 품위를 지키면서 묵묵히 극기[견인주의(堅忍主義)]로써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를 통해 천재적 시인이 당시 사회에서 일반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한 채, 고독감과 공허함을 느끼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시에 나타난 사상은 크게 비관, 자비, 극기로 나눌 수 있다. 고독한 존재인 인간은 이 고독을 피할 수 없고, 신에게 사명을 부여받은 위대한 존재일수록 그 고독감은 크다는 것이다.
≪운명≫은 성서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감람산>과 <삼손의 분노>에서 그는 삼손과 예수를 위대한 인물로 등장시켜 고독을 절감케 하며, <플루트>에서는 시시포스의 후예인 인간의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자연이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존재이며, 영원한 존재인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덧없는 존재인 인간을 비웃는 <목자의 집>, 인간 조건과 운명이라는 문제를 제시하는 <운명>, 인간 존재의 비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비를 내세우는 <토인의 딸>, 인간의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동족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제시하는 <늑대의 죽음>, 인간이 처해 있는 비극적 숙명 앞에서 조용히 자기의 운명을 감수하고 묵묵히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극기주의의 핵심 사상을 이야기한 <신화>, 순수 정신의 소산인 사상을 후대에 전달할 것을 주장하는 <바다에 던진 병> 등에서 자신의 사상을 상징적인 방법을 통해 표현했다.
비니는 낭만파 시인으로서 감정 토로를 직접 표현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면서 장중한 음악적 효과를 이용했다. 고독한 존재라는 운명을 안고 태어난 인간은 카뮈의 부조리한 인간과 닮아 있다.
200자평
이 시집은 비니 사후에 출판된 시집으로 13편의 철학적인 시가 담겨 있다. 이 시들 속에서 우리는 그의 인생관, 사상 등을 엿볼 수 있는데 특히 늑대의 죽음을 통한 극기주의는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다.
지은이
알프레드 드 비니(Alfred de Vigny)
알프레드 드 비니는 왕정복고 시기에 군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7세에 궁중 근위병 소위로 임관해 13년간 군대생활을 했다. 여러 근무지를 다니며 틈틈이 독서와 명상을 하고 시를 썼다. 1822년 군에서 쓴 10편의 시를 모아 첫 번째 시집을 출간했지만 성공을 이루진 못하다 1825년 리디아 번버리와 결혼해 파리에 정착한 후 낭만주의 문학서클 활동에 참여하며 ≪고금 시집≫과 역사소설 ≪생-마르≫를 발표해 유명해졌다. 1837년 어머니의 사망 등 큰 시련을 겪은 후부터 아름답고 심오한 사상이 담긴 시를 쓰기 시작한다. 1864년 사망 후 발표된 시집 ≪운명≫은 그가 25년간 사색하고 명상한 철학 사상과 시적 고행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담긴 11편의 철학적인 시는 그의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일생은 환멸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정열 때문에 이상을 단념할 수 없었고, 자신의 이상을 믿기에는 너무도 투명한 의식을 가졌다. 이러한 절망의 딜레마에서 그는 말없이 고통을 참으며 살았다.
옮긴이
최복현
최복현은 서강대학교에서 불어교육학 석사과정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했고, 시집 ≪새롭게 하소서≫ ,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 번역서 ≪도둑일기≫, ≪몽롱한 중산층≫, ≪에로틱 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 ≪어린 왕자≫, ≪별≫, ≪틱낫한, 마음의 행복≫, ≪낙천주의자 캉디드≫, ≪행복한 상상 플러스 102≫ ,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소설 ≪어느 샐러리맨의 죽음≫ 등을 냈다. 최근 철학 에세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아름다운 반항≫ 등과 인문서 ≪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를 발표했으며, ≪올 댓 러브≫를 필명 최시언으로 최근 발표했다. 최근작으로는 ≪명작에서 멘토를 만나다≫, ≪어린 왕자의 인생수업≫ 등이 있다.
차례
운명
목자의 집
신화
토인의 딸
삼손의 분노
늑대의 죽음
플루트
감람산
바다에 던진 병
완다
순수한 정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아아, 야생의 방랑자여, 이제 너의 뜻을 깨달았으니
너의 마지막 눈초리는 내 가슴에 와 닿았다.
그 눈초리는 말했다;
“할 수 있다면 노력하고 심사숙고하여 너의 영혼이
숲 속에서 태어난 우리가 맨 처음 올랐던
고결한 지고의 단계에까지 이르도록 하라.
신음하는 것, 우는 것, 기도하는 것은 모두 비열한 일이니,
운명이 너를 부르려는 길에서 너의 길고도 무거운 책무를 힘껏 다하라.
그러고는 나처럼 고통을 당하고 말없이 죽어가라.”
-<늑대의 죽음> 중에서
2.
지금 신탁은 공중과 거리를 떠돌고 있다.
행인이 행인에게 하늘에 있는 검은 점을 가리킨다.
우리는 구름 속에 있는 고독과 우리를 연결시킨다.
운명의 빛이 비치기 4년 전 일이다.−하지만 권력은
그의 교리 속에 갇히고, 그림자 속에서 그는 시소 놀이에
숨겨진 문제들을 생각하느라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신화> 중에서